오랜만의 드라이브에 한 곡이 마음을 닦았다


지난 주말, 오래 비어 있던 차 열쇠를 다시 손에 쥐었다. 주차장을 빠져나오던 순간, 도심과 교외가 맞닿는 경계에서 공기가 한결 차가워졌다. 계절은 가을 끝자락이었다. 창문을 반쯤 내려 바깥 소리를 조금 더 들었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타이어가 마른 낙엽을 쓸어내는 소리가 났다. 방향을 정하고 시선을 도로에 집중했다. 길 위에 몸을 실은 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오래된 일상으로의 작은 복귀였다.

시동을 켜자 익숙한 엔진음이 차 안을 채웠다. 라디오 다이얼을 돌리다 멈춘 곳에서 한 곡이 흘러나왔다. 가사 하나하나를 귀 기울여야 들릴 만큼 소리는 작았다. 그러나 그 조용함이 오히려 음의 결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멜로디가 오래된 사진을 펼치는 것처럼 과거를 꺼냈다. 무심코 지나쳤던 저녁들, 대화가 끊긴 날들, 혼자였던 밤들이 고요히 스쳐갔다. 나는 운전대를 느슨하게 잡고 숨을 고르며 노래의 호흡을 따라갔다.

음악은 곧 생각의 표면에 쌓인 먼지를 털어냈다. 어떤 문구가 내 안으로 들어와 멈췄다. 그 문구는 내게 할 일을 미루지 않게 했다. 꾸역꾸역 채워왔던 일정표, 어쩐지 밀어두고 있던 대화, 고단함을 미뤄두게 한 이유들을 하나씩 불러냈다. 분주한 시간 속에 확실히 잊고 있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그 느낌은 씁쓸했고, 동시에 풀릴 요량으로 남겨진 매듭 같았다. 노래가 끝나갈 무렵, 나는 운전석에 기대어 잠깐 눈을 감았다. 창밖의 풍경은 그대로인데, 안의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창문 밖의 풍경 라인드로잉 이미지

드라이브는 나에게 언제나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었다. 이동 자체는 목적지가 없더라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 차 안에서 듣는 한 곡은 대화를 대신하기도 하고, 거울이 되기도 한다. 이번에는 그 노래가 내가 자주 애써 외면해온 감정과 정직하게 마주하게 해주었다. 마음을 닦는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무심코 쌓아뒀던 것들이 한겹씩 벗겨졌다. 그리고 빈 자리에는 조금의 여유와 다음을 계획할 용기가 들어왔다.

돌아오는 길, 나는 라디오 볼륨을 낮추고 달리는 것의 의미를 곱씹었다. 이동은 소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재정비의 도구다. 차비를 들여 일부러 길을 돌리고, 시간을 내어 한 곡을 듣는 행위는 결과로만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일상에서 회복이 필요할 때, 비용이나 효율만으로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준비하는 마음, 쉬어도 된다는 허용, 그리고 다시 시작할 계획을 세우는 것—그게 더 실용적인 선택일 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가(Leisure)의 정의와 의미
여가는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시간으로, 휴식·여흥·자기계발 등 다양한 활동을 포함합니다. 여가 활동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정신적 회복과 자아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며, 일상에서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는 행동이 회복에 도움을 준다고 설명됩니다. 출처: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여가

글을 마무리하며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짧은 드라이브와 한 곡의 조합이 내게 준 것은 위로와 작은 결단력이다. 여러분도 가끔 길을 나서 보길 권한다는 표현 대신에, 스스로에게 시간을 줄 것이라는 제안을 해보고 싶다. 차를 고른 방식, 음악을 듣는 습관, 이동 경로를 조금 바꾸는 일은 별거 아닌 소비처럼 보이지만, 쌓이면 마음을 다독이는 루틴이 된다. 나는 앞으로도 때때로 몇 시간을 내어 도로 위로 나가려 한다. 그때마다 어떤 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